설교-음성&동영상

히브리서11:13-16 본향을 사모함

이성구 0 2,566 2005.02.11 18:15
‘고향’.. 묘한 느낌이 있는 단어다. 고향 이라는 말을 하다보면 뭔가 다른 감정이 떠오른다. 특히 명절에는 더욱 그러하다. 워낙 바쁘고 분주한 가운데 고향 가기를 미루었던 사람들도 보면 처음에는 그저 그렇다가도 시간이 갈수록 왠지 고향에 가지 않으면 허전한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다.
전에 같이 공부하던 사람중에 명절이지만 고시공부를 핑계로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던 사람이 있다. 자취하는 곳은 서울이고 고향은 전남이었다... 공부를 위해 마음을 독하게 먹은 것이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인가? 텅빈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시간이 갈수록 왠지 마음이 허전해진 것이다. 그래서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자 극장을 찾는다. 한참 영화를 보다가 끝까지 보지 못하고 뛰쳐나오게 된다. 왜?
  영화의 한 장면에 시골마을을 보여주는데 자기 고향의 숲과 냇가.. 마을을 떠올리게 된것이다. 물론 그 장면이 자기 고향과 똑같은 곳은 아니지만 그것을 보다가 그만 울컥하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치밀어오른 것이다. 허겁지겁 서울역을 향해 전철을 타고 와서는 차편을 알아본다. 물론 다 예매되고 없다. 그렇다고 고향에 못가는가? 일명 나라시.. 택시나 봉고차.. 그리고 미리 차표를 넉넉히 끊어놓고 조금 더 비싸게 파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너무 살기 좋은 나라인가? 한편 이런 정도 있어야 어려운 사람이 살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이렇듯 고향은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고향에는 여러 가지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쓸쓸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오늘 명절을 맞이해서 고향에 대해 생각해보길 원하는데 이 땅에서 잠시 다녀가는 그런 ‘고향’ 이 아니라 신자들이 돌아가게 될 영원한 고향에 대해서 묵상해보기 원한다.

[1] 믿음과 소망으로 나그네 길을 살아간 신앙의 선조
히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
1) 여기에서 ‘이 사람’ 은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으로서. 모두 가나안 땅과 그 후손에 관한 복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지만 그 약속이 실제로 이뤄지는 것은 보지 못한 채 죽은 사람들이다(그래서 약속을 받지 못했다고 말씀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일생을 살았다.(‘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2) (‘멀리서 보고’)멀리서 보았다 함은 육안으로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것을 마음으로 기대하고 소망한 것으로서 믿음이 전제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본 것이 아니라 멀리서 보고 환영하였기 때문이다. 즉 즐겁게 바라본 것이다.
막연한 기대라면 환영하지 않았을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다)
3)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일찍이 아브라함은 이방 족속들에게(헷 족속)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라고 창23:4에서 말하였다. 야곱 역시 바로 왕 앞에서 “내 나그네 길..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임을 밝혔다.
->옛 신앙의 위인들은 눈에 아무 증거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오히려 기뻐하고 또한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이방인 됨을 스스럼 없이 밝혔다. [1] 믿음과 소망으로 나그네 길을 살아간 신앙의 선조


[2] 두가지 본향
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결국 신앙의 선조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이 땅은 단지 나그네 길이요 영원한 본향은 하늘나라임을 증거한 것이다.
15절,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여기에서 나온 바 본향은 육적인 고향을 말한다. 이렇게 본향은 두가지다.
1) 나온바 본향 /
2) 돌아갈 본향 /
보통 제2의 고향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냥 태어나서 자란 곳을 고향이라고 한다면 정말 그 사람의 꿈과 희망을 이루고 그곳에서 많은 의미있는 일이 있으면 오히려 태어나서 자란 고향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갖게 마련이다. 즉 사실은 제2의 고향이 오히려 ‘제 1의 고향’이 되는 것이다.  신자들에게 돌아갈 본향, 즉 하늘나라는 어찌보면 제2의 고향같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나온바 본향인 이땅의 고향보다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하고 의미있는 본향인 것이다.

[3] 하나님께서 본향집을 예비하셨다 는 것이다.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 더 나은 본향: 그곳은 더 나은 본향이다. 당연하다. 하늘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구름위로 올라가면 비의 영향에서 벗어나 찬란한 햇살을 볼 수 있듯이(중국갈 때.. 수제비 뚝뚝 떼어 놓은 듯.. ) 우리가 돌아가게 될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야말로 우리가 그곳으로 가게 되는 그날 까지 사모할 만한 가치가 있고 당연히 사모해야 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은 하늘의 본향에 올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신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랑거리라기 보다는 영광 가리우고 죄로 인해 하나님의 명예를 먹칠이나 하던 부끄러운 존재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제 주님 계신 전에 담대히 나아올 뿐 아니라 세상에도 나는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인을 당당히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우리를 하나님은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시고 우리를 위해 본향에 아름다운 성을 준비하셨다.
  세상에서도 비록 그 아버기가 비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 자기 아들이 거할 삐까번쩍한 집이 준비된 아버지는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유학마치고 온 아들? 군에서 제대한 아들? 장가갈 아들? 이든 그 아버지가 근사하게 아들 거할 곳을 마련해 놓은 사람이라면 설령 아들이 지금 객지(군대, 자취방, 오피스텔..)에서 고생하고 있다 해도 꿋꿋이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자기 할일을 잘 감당하고 있다면 그 아버지는 전혀 부끄러움 없이 오히려 그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16 중) 여기에서 ‘저희’ 대신 자기 이름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김 아무개..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인 것이다.
[1] 믿음과 소망으로 나그네 길을 살아간 신앙의 선조  [2] 두가지 본향(하늘본향이 더 소중)
[3]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운 본향집을 예비하셨다
[적용] 따라서 우리는....
 1)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고 기대하자.
 2) 영원한 본향을 위해 이 땅의 나그네 생활에서도 최선을 다하자. 신앙의 선조들은 다른 것 팽겨치지 않았다. 주로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실수...
 3) 이 땅의 고향도 주님 주신 곳이다. 고로 고향과 고향의 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갈수록 환경파괴, 인구감소(심각), 교회의 어려움... 심각해져가고 있다.
 4) 민속절기를 오히려 적극적인 전도의 계기로 삼자. 평소에 고향의 부모 어른들과 전화를 지금보다 자주하자. 훨씬 부드럽다. 묘소를 다듬는 목사님에 대해 바라보시는 고향어른들... 기본예의를 평소에 지키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5) 우리를 본향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순종하자 / 렘 42:12 /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리니 그로도(바벨론) 너희를 긍휼히 여기게 하여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본향에서 꼭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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