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음성&동영상

“겉옷만 만져도(마 9:18-26)

이성구 0 2,871 2004.09.15 10:57
마태복음 9:18-26(p.14)  “겉옷만 만져도 

예수님께서는 새포두주와 새 가죽부대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이 비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령의 가죽부대...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리의 말씀을 담아야 할‘심령주머니’가 여전히 낡은 사상, 내가 그동안 겪어오고 배워온 사상에 지배를 받는다면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사상과 경험으로 저울질하는 바리새인과 요한의 제자들이 범했던‘어리석음’ 내지는 ‘무례함’을 범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우리는 성령으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날마다 날마다... 한문으로 ‘일신 우일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누군가 에수님께 절하고 부탁을 하게 된다.
18“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직원이 와서 절하고 가로되 내 딸이 방장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하니”
여기에서 직원은 당시의 ‘회당장’을 일컫는 말이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예배 드리고 율법을 가르치는데 사용된 건물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주 멀리 있는 경우, 그리고 전쟁으로 성전이 파괴된 경우 이 회당이 신앙생활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오늘 나오는 직원은 바로 이 회당을 관리하는 회당장이었다. 그는 매우 급하게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절을 하고는 대뜸 예수님께 자신의 딸 얘기를 한다. 그에게는 12살짜리 무남독녀가 있었다. 그런데 그 귀한 딸이 방장 죽었다는 것이다. ‘방장’은 ‘금방, 막, 지금’을 말한다. 이는 이미 목숨이 끊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급한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지금 자신의 딸이 죽어간다는 것이다. 어쩌면 회당장이 예수님께 오고 가는 사이 숨이 끊어졌을지도 모를 정도로 매우 위급한 상황이며 촉급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심정은 죽어가는 자녀의 모습을 대한 적이 없는 사람은 잘 알수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속이 숯검댕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회당장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18하“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그저 예수님이 자신의 딸의 몸에 손만 얹으면 살겠다는 것이다. 지금 죽어가고 있는 위독한 자신의 딸, 아니 어쩌면 자기가 오고 가는 사이 이미 숨이 끊어졌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딸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분이심을 그는 믿었다는 것이다. 생명을 오직 예수님께 맡긴 것이다.

그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회당장을 따라 집으로 향하셨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무려 12년간이나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에수님의 뒤쪽으로 살짝 다가와서 겉옷을 은근슬쩍 만지게 된다 -“출혈성 자궁 내막염, 자궁암 등으로 말미암아 수시로 하혈하는 증세로서 문둥병처럼 불결하게 취급을 받았음”그녀는 12년간 말못할 고생을 하였다. 사람들은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하였고 많은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재산도 축내었다.(막5:26)
자포자기 상태에서 오직 희망은 예수님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회당장처럼 믿음이 있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것이 아니었다.
21“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마음 속에 그녀는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받겠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으로 예수님의 겉옷을 만졌다. 사실 많은 무리들이 있었기 때문에 옷 슬쩍 만진다 한들 그것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러나 예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 (배꼽티???) 예수님은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겉옷에 닿는 것과 다른 느낌을 받으셨다. 즉 혈루증 걸린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을 만진 것은 그냥 만진 것이 아니고 예수님에 대한 기대와 소망과 믿음으로 만진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갑자기 몸을 돌이키사 그 여자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22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이렇게 말씀하시는 순간 그녀는 병고침을 받게 되었다. 그녀의 믿음이 예수님께 인정을 받는 그 순간 그녀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혈루증 걸린 여인을 고치신 후 계속 발걸음을 재촉하시사 드디어 회당장의 집에 도착을 하셨다. 아!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예수님께서 그곳에 도착하시는 사이 그 소녀는 그만 숨을 거둔 것이다. 들어가보니 이미 초상집 분위기가 딱 잡혀있었다.
23절, ‘피리부는 자들’: 초상집에 서 죽은 자를 애도하기 위해 피리를 불었다
      ‘훤화하는 무리’: 애곡하는 자들+먹으러 오는 자들..(한국의 장례식장)
예수님은 그들을 단호하게 내 보내신다. 24“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미 생명을 주관하실 권세를 갖고 계셨고 회당장의 믿음을 보고 그 소녀를 살리기로 작정했기에 숨이 끊어진지 1시간이든 나흘이건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주님의 눈에는 그 소녀는 잠시 휴식하고 있는 것 뿐이다.

예수님은 믿음 없이 비웃는 무리들, 그저 형식적으로 혀를 차며 곡하고 피리불고 떠드는 그들을 내어보내셨다. (저도 하관예배 가보면 불신자들의 모습이 가관이다) 이렇듯 불신앙은 예수님으로부터 외면당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시고는 즉시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정말 자던 아이가 깨어나듯 소녀는 일어났고 즉시 그 소문이 온 땅에 퍼지게 되었다. 할렐루야!!!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인 것이다. 바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저 세상에서 잘먹고 잘살아봐야 얼마나 잘먹고 잘살며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되는가? 기껏해야 7,80이고 길어야 90이다. 그러고 나서 영원히...영원히.. 지옥가면 그게 뭔가?.... 우리는 오늘, 내일을 바라보기 보다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하루 하루를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아가자.
  오늘 말씀을 통해 몇가지 되새겨볼 교훈은 ...

1.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과 접촉했어도 구원받은 것은 혈루증걸린 여인이었다. 세상에서 멸시천대 고통 받아도 예수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으로 접촉하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 교회 나온다고 해서 구원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담대한 믿음으로 예수님과 만나는 사람에게 구원이 이뤄지는 것이다. 성당에서는 일년에 1차례, 심지어 몇 년이 지났어도 한 차례 나오면 된다...심지어 면죄부, 속전....

2. 혈루증, 회당장 공통점: 불가능의 상태, 눈에 다른 것이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하여 믿음 하나만으로 고침 받음.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3. 예수님은 어느 때라도 역사하신다. 심지어 가장 늦었다고 한 때라도 주님이 역사하신다. 침착하라. 포기하지 마라(성도의 견인)  사람의 판단과 주님의 판단은 다르다. 주님의 판단이 우선한다. 주님의 눈을 구하라. 사람은 진리라 할지라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비웃기도 한다.

4. 우리의 죽음도 잠시 잠을 자는 것일 뿐이다. 아 잘잤다 하고 하품하며 깨어나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겐 영원한 천국의 소망이 있다. 우리는 날마다 부활을 맛보고 있다. 밤에 자고 아침에 깨는 것, 이것은 부활의 연습이다. 고로 자기 전에 기도... 일어나자마자 기도... 이왕 새벽 나오기 전에 1분이라도 감사하며 나오자.

오직 믿음의 말과 실천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크신 은혜를 경험하자!!!

Comments

Categ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