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음성&동영상

마태복음 9:14-18 “온전한 보전

이성구 0 2,555 2004.09.08 16:20
남이 좋은 일을 하면 깍아내리거나 삐딱한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저 사람이 과연 무슨 일로 착한일을 하는가? 자랑하고 싶어서겠지? 아니면 과거에 잘못이 많아서 속죄하기 위한 것일꺼야.. 등등.. 제 맘대로 상상하고 결론을 내린다.
예수님은 세리였던 마태의 집에서 식사도 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엔 마태 뿐 아니라 다른 세리들과 친구들도 함께 하였다. 물론 그들은 모두 당시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던 죄인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그들이 개취급 당하는 신분이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의사가 환자를 돌보듯이 사랑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비전을 제시하셨다. 그러나 당시 사회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바리새인들이 죄인들과 어울린다는 이유로 예수님에 대해 궁시렁궁시렁 거린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지만 병든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하다고 선포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셨음을 나타내셨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제는 세례 요한을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눈치없이 이런 말을 한다.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아~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바리새인들보다 한 술 더 떠서 어째서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냐고 따지는 것이 아닌가?
사실 생각해보면 당돌한 일이다? 감히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오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왜 제자들 금식 안시키느냐? 제자들 교육 잘 시켜라 는 듯한 얘기를 한다는 것... 참 대단한 사건인 것이다.
그러면 우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의 상황에 대해서 살펴보면,-  예수님이 활동하시기 조금 앞서서, 세례 요한이 먼저 등장하여 회개를 외치며 예수님이 오실 것에 대해서도 열심히 전하면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왔던 것이다. 또한 그는 진리를 선포하는 가운데 당시 분봉왕 헤롯의 비윤리적인 행동에 대해 비판을 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모함을 당하여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정의 가운데 하나님의 선지자 노릇을 하던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당장 자신의 스승이 감옥에 갇혀있는데 예수 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기적을 행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자 예수님에 대해 궁금해 하면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죄인들과 어울려 식사도 하고 담소를 나누는 예수님의 모습에 그들의 인간적인 안목으로 바라볼 때, 한가로와 보이고 눈에 거슬리기까지 한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도 금식은 유대인들에게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여러 명절을 기해서 일년에 3번 이상 금식을 하기도 하고 특히 바리새인들의 경우 매주 월, 목요일마다 이렇게 일주일 중 이틀을 금식하였고 요한의 제자들도 금식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보니까 희희락락 즐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지금 자신들의 스승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혀있는 판국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눈의 가시같은 세리란 직업의 마태와 그 무리들과 어울려 식사하고 있으니...

그런 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15“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의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 금식/ 간절함, 애통(자신의 죄, 남의 죄, 민족의 죄....)의 극적인 표현
그러나 지금은 능력의 주님, 구원의 주님이 함께 하시는 관계로 직접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대화하며 기쁨 가운데 천국을 미리 맛보는 시기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시기이다. 우리가 만일 2,000년전에 태어나서 육체로 오신 예수님과 함께 같이 식사도 하고 잠도 자고 같이 전도여행도 다니고... 그야말로‘따봉’이 아니겠는가?  뭐~ 울거나 불평하거나 금식할 생각조차 안날 것이다. 물론 지금도 우리는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주님과 교제하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과 늘 동행하지만 실제로 눈에 보이는 가운데 예수님과 생활한다는 것, 얼마나 환상적인가? 굳이 금식할 이유가 없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너무나 기쁜 삶이어서 성경은 예수님과 성도와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사이로 표현하고 있다.
사랑하는 신랑 신부가 함께 하는데 슬픔 속에 빠져 눈물과 탄식을 보이면 되겠는가? 기쁨만이 가득한 행복한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만일 신랑을 빼앗기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바로 그때 슬퍼하고 금식해도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신랑을 빼앗길 때가 온다고 말씀하셨다. 즉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중상모략을 통해 체포되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할 때가 올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때는 슬퍼하며 금식해야 한다. 간절하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할 것이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나의 죄’를 통회하며 자복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바리새인들과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낡은 사고방식을 고칠 것을 두가지 비유로 알려주셨다.
16-17“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생베: 한번도 세탁해본 적 없는 새로운 천. 이것으로 낡은 옷에 기울 경우 옷의 낡은 부분을 당기게 되고 특히 빨래 후 말르면 더 오그라들어서 옷을 망치게 된다. 또한 새 포도주는 이제 막 발효를 시작하기 때문에 발효력이 강학 일어나 만일 낡은 가죽 부대에 담게 되면 부대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려서 부대도 버리고 포도주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두가지 비유는 낡은 교리와 전통으로 새롭게 펼쳐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이해하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갈등만 생기고 무익한 결과만 생긴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시다. 예수님의 말씀 자체가 복음이요 새로운 천국 백성의 생활 기준인 것이다. 예수님의 천국복음은 새로운 천과 새 포도주와 같이 새롭고도 왕성한 파워-힘을 갖고 있다. 고로 낡은 자신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도리어 뒷걸음질 칠 분인 것이다.
한글을 처음 배울 때 보면 기역, 니은, 아야어여부터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면 글자를 통째로 읽어간다. 9살짜리 초등학생정도 되면 기역 + ㅏ 니까 ‘가’이렇게 읽지 않고 한번에 ‘가’라고 읽는 것이다. 그러나 한글을 처음 배우던 유치원때의 습관대로 기역 + ㅏ 로 고집하다보면 책 한페지 읽는데 30분 이상 걸릴 것이다. (곱셈도 마찬가지...)

우리가 주의할 부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령의 가죽부대...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리의 말씀을 담아야 할‘심령주머니’가 여전히 낡은 사상, 내가 그동안 겪어오고 배워온 사상에 지배를 받는다면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사상과 경험으로 저울질하는 바리새인과 요한의 제자들이 범했던‘어리석음’ 내지는 ‘무례함’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차닦을 때 수세미로 빡빡 닦으면? ^^)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임에 있어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과 감사하는 심령, 그리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말씀에 대한 공경심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진리의 말씀이 내 안에 잘 녹아들어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 든든히 서게 하고 그 말씀을 능력으로 나타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보전인 것이다.
(보전하다: 간직하다, 보호하다, 보존하다)

아멘으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실천하시어서 능력의 생활을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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