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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강건” 에베소서 6장 10~12(신 p.316)

이성구 0 2,751 2004.06.20 06:43
오늘 본문 에베소서의 배경이 되는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통해 직접 3년이나 머물며 세운 교회다. 이 글을 쓸 당시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여 있는 죄수 신분으로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직접 만나서 얘기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을 향한 간절한 권면을 ‘에베소서’를 통해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에베소 교회에는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섞여 있었다. 그로인해 율법과 전통을 강조하는 유대인과 새로 유입된 이방인들 사이에 이질감과 긴장감이 있었고 또한 이단의 위험이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복음을 중심으로 바로 설 것을 에베소서를 통해 강력히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때와 지금은 많은 세대 차이가 있지만, 영적으로 볼때 오늘날의 교회환경과 에베소 교회의 환경과는 별 다를 것이 없다. 우리 모두 한국사람이지만 여전히 개성이 각각 다른 성도들이 모여 있다. 또한 주변에 불교와 미신, 그리고 여호와 증인, 몰몬교, 통일교 등등 이방종교와 이단들의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에베소 교회나 우리 호산나 교회나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즉 이 말씀은 오늘날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특히, 오늘 본문 6:10~부터는 에베소서의 결론을 내리면서 지금 이 시대는 영적인 전쟁에 처해있으므로 우리는 영적인 군사로서 영적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적극적인 신앙인의 자세를 갖출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 10절의 말씀부터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10절은 “종말로”라고 시작을 한다.
 “종말로”라는 것은 ‘마지막으로’ , ‘결론적으로’라는 뜻이다. 오늘 6:10절 이전에 있는 내용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이제 결론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이다. 이 한주간은 특히 이 말씀을 놓치지 말고 묵상하며 살아가시기 바란다.
이렇게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에게 힘주어 말씀한 내용은 너희가 ~ 강건하여지라는 것이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사도 바울은 그 편지를 로마의 감옥안에서 썼다. 본인은 감옥안에서 억압받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절히 그가 기도하고 부탁했던 것은 너희, 즉 에베소 교인들이 강건하여지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면... 목사만? 장로만? 직분자만? 이 아니라 우리 모든 심령 각각에게 해당되는 말씀인 것이다. 여기 서있는 저나 여기 이렇게 앉아계신 여러분 모두가 주안에서 강건하여지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한명도 빠짐없이“강건해져 가야함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왜 사도 바울은 강건하여질 것을 강조하고 있는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지금 이 시대는 악한 영들이 호시탐탐 삼킬 자를 찾아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비는 시대이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도 이렇게 경고하였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사자를 가까이서 보면 울부짖지 않아도 무섭다. 그런데 먹이를 찾아 두루다니며 삼켜버리고자 하는 ‘우는 사자’, 그냥 장난삼아 또는 간식거리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삼킬 자를 찾아다니는 사자에게 걸리면 그야말로 뼈도 못추리게 되는 것이다.
  유명한 탐험가였던 리빙스턴이 사자에게 물렸던 경험을 말한 것을 책에서 읽었다. 그는 한 쪽 팔만 물렸었지만 마치 수술전 전신마취를 당한 것 같았다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공포에 휩싸여 온 몸이 마비되고 그 상태에 물리게 되니 극심한 고통으로 말미암아 잠시 후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되더라는 것이다. 여러분 사나운 짐승이 다른 짐승을 잡아먹은 흔적을 본 일이 있는가? 깃털과 털, 몇 개의 뼈만 남아있는 현장...
  사단은 이렇듯 성도들을 넘어뜨리려고 ‘전심전력’하는 사자와 같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단의 공격에서 성도들이 안전할 수 있도록 강건하여질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단의 공격’하면  그저 막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11절의 말씀을 주의해 볼 필요가 있는데 11절에서는 ‘마귀의 궤계’라고 표현하고 있다. 마귀의 궤계.
궤계 라 함은 ‘간사한 유혹’을 말한다. 마귀의 자세는 마치 우는 사자와 같이 적극적이지만 마귀가 쓰는 방법은 마치 마귀가 아닌 것처럼 교묘하게 우릴 공격한다는 것이다.
마치 간첩을 떠올려보라. 매우 잘 훈련된 간첩은 어떤가? 전혀 간첩같지가 않다. 사회 각계 각층에 침투하여 자신들의 사상을 은밀히 주입하고 분열을 조장하여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다. 그러나 훈련되지 않은 어설픈 간첩은 벌써 외모부터 티가 난다. 짧은 양복바지, 어울리지 않는 양말색깔...등등 한 눈에 봐도 의심스럽다. 그러나 사탄은 그야말로 궤계를 쓴다. 매우 간사해서 우리로 하여금 전혀 사단의 역사 같지 않게 은밀히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가지고는 어느 한 순간 우릴 삼켜버리는 것이다. 이단들도 보라. 비슷한 건물에 비슷한 교리, 비슷한 방법들을 통해 사람을 모아놓고 어느새 정신차려보면 이단의 늪에 깊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사단은 교회 안팎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략을 한다. 온갖 환경들을 동원한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믿는 사람간에도 분열을 조장하여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감정 싸움을 일으키기도 한다. 새로 설치하게 될 교회오르간의 위치 때문에 분열된 교회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사단은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여 우리로 신앙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게 사탄의 방법인줄 모르게 하는 것이 바로 마귀의 궤계인 것이다. 고도의 사기꾼과 같다.

특히 오늘날 사탄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게으름을 조장한다. 신앙생활 뭐~ 이정도면 되겠지...하고 현실에 안주하게 한다. 점점 갈수록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지나치게 편한 것만 추구하고 있다.  오늘날 서구유럽에서는 예배가 줄고 있다. 한국은 예배가 많지만 성도들이 결석하는 차원이지만 그쪽은 아예 예배자체가 줄어들었다. 새벽기도-심야기도회도 없다. 선데이 크리스찬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그래서 그런지 서구 유럽에 가보면 그저 교회가 문화재로만 남아있거나 극장이나 다른 시설로 임대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사단의 고도의 전략에 넘어간 것이다. 사실 저도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세월이 갈수록 점점 편하고 싶어지더라. 그래서 부흥회를 결정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하지 말까..? 안하면 편한데..?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심령이 강건하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로서 우리의 심령이 강건하기를 바라면서 부흥성회도 열었던 것이다.
  교회에서도 작은 행사 하나라도 할려면 쉽게 되는 일이 없다. 주의 일에는 다 수고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때마다 우리 마음에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다음에 하지... 그냥 넘어가지.....  하지만 우리는 그저 당장 편한 것에 치우쳐 거짓 평화에 속아 넘어가선 안된다.
*여하튼 사단은 온갖 게으름과 문화, 각종 환경, 심지어 교회 내에서의 인간관계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믿는 자들을 통째로 삼키려고 하고 있다.
-> 이에 대처하는 방법은 우리가 강건해지는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냥 강건하여지라고 한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고 말한다.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은 모든 현상의 배후에 있는 영적인 적, 바로 사단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만의 힘으로 절대 이길 수 없다. 따라서 이미 사단을 정복하신 분, 예수님을 믿어야 이길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즉 능력이 풍성하신 예수님 안에 있음으로 우리는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적들이 아무리 불화살을 쏘아대도 우리가 탱크를 타고 가면 끄떡 없을 뿐 아니라 탱크에서 포탄으로 공격하여 적의 기지를 섬멸할 수 있듯이 권세와 능력이 무한하신 예수님을 믿을 때 그것이 바로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바울이 “강건하라”고 하지 않고 “강건하여지고”, 현재 진행형으로 말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당장 한번 강건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마주 서는 그날까지 계속적으로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즉 예수님을 끝까지 믿으며 부지런히 말씀실천과 기도생활을 통해 믿음이 자라나며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이 강건해져가는 것을 기뻐한다. 비록 지금 비실비실 해도 점차 강건하게 세워져가는 것을 기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강건하여져가기를 기뻐하신다. 사도 바울의 간절한 바램과 기도처럼 저와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져서 아무리 우는 사자와 같이 사단들이 기기묘묘한 방법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치시고 승리를 누리시기를 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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