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

[re]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죄~ (늦은 답변에 죄송)

이성구 1 1,812 2003.12.13 22:07
먼저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상담실 이용자가 거의 없어 확인을 안하다고 오늘에서야 확인했습니다. 이문제는 상당히 신학적인 부분이 있어 다소 답변이 장황하지만 인내하시고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타락한 자'들은 그야말로 강력한 영적 체험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하늘의 은사'라고 표현할 정도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사를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 하나님에게서 떠나간 사람을 의미합니다.(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또 계속 죄를 짓는 것" 정도로는 의미가 약합니다 ) 혹시 주변에 그런 정도의 은혜를 맛보고 타락하신그런 분 보셨는지요? 보시기 쉽지 않을 겁니다. 아주 드물게 이단이었던 박태선(한때 장로로서 치유의 기적을 행하다가 교만해져서 전도관과 신앙촌 등 활발히 이단활동을 하다가 사망함, 지금은 에덴성회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음)과 같은 사람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한편, 주변에 간혹 과거에 학생회장, 청년회장 까지 지냈었지만 지금은 타락하여 전혀 신앙생활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이 히브리서가 말하는 정도("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로의  신앙생활을 했었는지는 하나님과 당사자 외에는 우리가 사실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
그렇다면 히브리서에서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예수님도 베드로에게 목욕한 자는 다시 목욕할 필요 없이 발만 씻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진정 은혜받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온전히 죄사함을 이루는 부분은 목욕에 해당된다면 신자로서 살아가지만 연약한 성품으로 인해 이런 저런 죄를 짓는 부분은 발이 더러워지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목욕 부분이 '회개'에 해당됩니다. 사실 회개는 회개하는  사람이 자신의 삶 전체의 방향을 전환시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생에 있어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일회적인 회개(회심과 같은)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본절은 타락한 자들이 일회적 회개를 다시 반복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구절입니다(세례를 두번 받을 필요가 없듯이). 고로 우리가 통상적으로 죄를 지을 때마다 떠올리는 '회개'는 사실 근본적인 의미의 회개(목욕)가 아니라 일상적인 회개(발씻음)를 말하는 것이죠.
또한 동시에 히브리서의 구절은 이미 말씀드린대로 그정도로 큰 은혜를 입고도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범죄하였을 때 그것은 예수님을 못박는 것과 같이 죄가 심각하므로 그 심령의 강퍅함으로 회개 자체가 불가능한 것을 말씀합니다.
주변에 보면 왕년에 신앙생활 한가닥(?)했다는 사람들중에 타락한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들중 다시 돌아와 열심이신 분도 있고 아닌 분들도 있는 것을 보면.
과연 누가 히브리서가 말씀한 정도의 타락한 자인지는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고유권한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고린도전서에서도 성전을 더럽힌다는 것 역시 그 대상이 '너희'로 되어있는데 여기서 너희는 개인 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반면에 성전은 단수입니다. 즉 우리들이 한 몸(교회공동체)을 이룬다는 것으로서 성전을 더럽힌다는 것은 단순히 내가 개인적으로 짓는 죄(물론 그것도 심각하지만)를 가리킨다기 보다는 교회공동체를 망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소자 중 하나로 실족케 하는 것을 심각한 범죄로 말씀하셨는데 하물며 교회 공동체를 훼손시키는 것은 얼마나 심각하겠습니까?
  따라서 개인적으로 알게 모르게 짓는 죄도 사실 무척 심각한 것이지만 다른 지체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교회 공동체를 흔드는 죄는 너무너무너무너무 심각한 죄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성경에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가 말씀합니다.
또한 상한 심령, 통회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받으신다로 말씀합니다.
애통은 마음이 아픈 것인데, 자신의 죄를 깨닫고 마음아파하는 것이며 보다 성숙하면 다른 사람, 이웃, 민족의 죄악을 보며 마음아파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상한 심령이라는 것은 우리가 '속상하다'라고 할 때의 상함으로서 믿음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하는데 또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속이 상해하는 것으로서 결국 이는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아룀으로 용서로 이어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죄의 영향력과 심각성을 우리 역시 심각하게 인식하고 죄를 안짓도록 하는 것입니다. 죄를 안짓는것은 좀 방어적인 부분이고 선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은 죄를 안짓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위에 말씀된 심각한 죄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죄용서받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지경이다'라는 것은 내 개인의 판단일 수 있습니다. 육체의 질환에 있어 정확한 진단은 전문의가 하듯이 우리 영혼의 심각한 죄의 상태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나는 죄가 이정도니 용서될 것이고 저정도니 용서가 어렵고...그 정도는 아예 불가능하고... 이렇게 내가 판단할 것이 아니라,
죄라는 죄는 하여튼 (히브리서와 고린도전서의 죄보다도)매우 심각하게 여겨 솔직이 하나님께 애통과 상한 심령으로 기도하다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케 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한번 가정해봅시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으므로 끝장이야" 라고 나에게 말씀하셨다면...예, 포기하겠습니다..하고 인생을 막 살겠습니까? 이것은 하나의 가상의 상황이지만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죄를 짓는 것은 인간적이다 하지만 죄안에 머무르는 것은 악마적이다, 새가 머리위를 맴도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새가 내 머리위에 둥지를 틀게해서는 안된다"(키에르케고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s

2003.12.20 12:37
  감사합니다. 해결되었습니다.
Category